수능 한국사 핵심 200|개념·연표 암기 덱
전 시대의 서로 다른 핵심 사건·제도·인물·사료 200개를 한 장씩 정확하게.
무료 플랜 그대로 전체 카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가져올 때 AI 생성을 실행하지 않아 AI 크레딧도 줄지 않습니다. 추가하려면 Memly 계정이 필요합니다.
수능 한국사는 시대의 흐름과, 자료가 가리키는 제도·인물·사건을 정확히 연결해야 합니다. 이 덱은 선사부터 현대까지 서로 다른 200개 사건·제도·인물·문화재·사료를 한 항목당 한 카드로 구성했습니다. 각 답은 핵심 근거와 함께, 헷갈리기 쉬운 인접 개념과의 구분점을 설명합니다. 같은 사건을 연대형과 의의형으로 되풀이해 수를 늘리지 않았습니다. 가져오면 덱 전체가 간격 반복 일정에 올라갑니다. 이미 아는 항목은 출제 간격이 늘어나 눈앞에서 사라지고, 계속 흔들리는 것만 다시 돌아옵니다. 줄어드는 것은 200개를 한 번 훑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남지 않은 항목의 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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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카드
전체 200장 중 대표 카드 100장을 보여 줍니다.
| 앞면 | 뒷면 |
|---|---|
| 구석기 시대의 이동 생활 — 핵심 내용은? | 정답: 사냥과 채집을 바탕으로 한 이동 생활이다. 핵심-근거: 주먹도끼, 찍개, 슴베찌르개 같은 뗀석기를 사용했고, 동굴이나 막집 같은 임시 거처에서 무리를 이루어 생활했다. 혼동-방지: 신석기의 정착 생활과 구별한다. 농경과 목축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다. |
| 주먹도끼 — 핵심 내용은? | 정답: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대형 뗀석기이다. 핵심-근거: 양면을 떼어 만든 도구로, 자르기·찍기·해체 등 여러 작업에 쓰였다. 혼동-방지: 간석기와 구별한다. 간석기는 신석기 시대 이후에 널리 사용되었다. |
| 슴베찌르개 — 핵심 내용은? | 정답: 창 끝에 끼워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이다. 핵심-근거: 자루에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만들어져 있어 사냥 도구의 발달을 보여 주는 구석기 말기의 대표 유물이다. 혼동-방지: 반달 돌칼과 혼동하지 않는다. 반달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농경·수확 도구이다. |
| 빗살무늬토기 — 핵심 내용은? | 정답: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늬 있는 토기이다. 핵심-근거: 토기 표면에 빗살 모양의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며, 저장과 취사에 활용되었다. 혼동-방지: 민무늬토기와 구별한다. 민무늬토기는 청동기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
| 신석기 시대의 정착 생활 — 핵심 내용은? | 정답: 농경과 목축의 시작으로 정착 생활이 나타난 것이다. 핵심-근거: 움집에 살며 강가와 해안가를 중심으로 생활했고, 조·피 등을 재배하며 개·돼지 등을 기르기 시작했다. 혼동-방지: 구석기 시대의 이동 생활과 구별한다. |
| 가락바퀴와 뼈바늘 — 핵심 내용은? | 정답: 신석기 시대의 의생활과 관련된 도구이다. 핵심-근거: 가락바퀴는 실을 잣는 도구이고, 뼈바늘은 바느질에 사용되어 옷과 그물 제작의 흔적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단순한 식생활 유물이 아니라 직물 제작과 의생활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
|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 — 핵심 내용은? | 정답: 청동기 시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표 유물이다. 핵심-근거: 비파 모양의 형태를 지닌 청동 무기로, 청동기 문화의 전개와 지배층의 존재를 보여 준다. 혼동-방지: 세형 동검과 혼동하지 않는다. 세형 동검은 그보다 뒤 시기에 널리 나타난다. |
| 고인돌 — 핵심 내용은? | 정답: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다. 핵심-근거: 큰 돌을 이용해 만든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해되며, 사회 계층의 분화를 보여 주는 자료이다. 혼동-방지: 단순한 석조 구조물이 아니라 장례와 권력의 흔적이라는 점을 함께 본다. |
| 민무늬토기 — 핵심 내용은? | 정답: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핵심-근거: 표면에 문양이 거의 없는 토기로, 곡물 저장과 조리 생활의 확대를 보여 준다. 혼동-방지: 빗살무늬토기와 시기를 바꾸어 생각하지 않는다. |
| 청동기 시대의 벼농사 — 핵심 내용은? | 정답: 농경 생산이 확대되면서 사회 변화를 이끈 중요한 기반이다. 핵심-근거: 반달 돌칼, 홈자귀, 석괭이 같은 농경 도구가 사용되었고, 생산력의 향상은 잉여 생산과 계층 분화를 뒷받침했다. 혼동-방지: 신석기의 초기 농경과 구별한다.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력의 확대와 사회 분화가 더 뚜렷하다. |
| 거푸집 — 핵심 내용은? | 정답: 청동기를 주조할 때 사용한 틀이다. 핵심-근거: 청동 무기나 각종 도구를 만드는 데 쓰였으며, 금속 가공 기술의 발달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단순한 토기 제작 도구와 혼동하지 않는다. |
| 고조선의 8조법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조선 사회의 질서와 형벌을 보여 주는 법이다. 핵심-근거: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해를 입히면 곡물로 배상하게 했으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았다는 내용 등이 전한다. 혼동-방지: 8개 조문 전체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므로, 전해지는 일부 내용만 확인한다. |
| 단군 왕검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조선 건국 전승과 연결되는 상징적 인물이다. 핵심-근거: 후대 기록에서 국가의 시원을 설명하는 중심 인물로 전해지며, 고조선의 건국 의식과 역사 인식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역사적 실존 여부를 단정하기보다 건국 전승의 핵심 인물로 이해한다. |
| 청동기 사회의 군장 — 핵심 내용은? | 정답: 청동기 시대 지역 집단을 이끈 지배자이다. 핵심-근거: 고인돌, 청동 무기, 제사 유적 등은 군장의 권력과 사회 계층의 분화를 보여 준다. 혼동-방지: 후대 국가의 왕과 곧바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국가 성립 이전 단계의 지배자로 이해한다. |
| 여러 나라 시기의 옥저 — 핵심 내용은? | 정답: 동해안 지역에 자리한 정치 집단으로, 공납과 독특한 풍습이 알려져 있다. 핵심-근거: 대체로 고구려의 압박을 받았고, 소금·해산물 등을 바쳤으며, 민며느리제와 골장제 같은 풍습이 전한다. 혼동-방지: 동예와 구별한다. 옥저는 민며느리제·골장제 등이 특징적으로 언급된다. |
| 여러 나라 시기의 동예 — 핵심 내용은? | 정답: 동해안 지역의 정치 집단으로, 제천 행사와 특산물이 특징이다. 핵심-근거: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고, 단궁·과하마·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알려졌다. 혼동-방지: 옥저와 구별한다. 동예는 무천과 책화, 특산물이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
| 부여의 영고 — 핵심 내용은? | 정답: 부여에서 열린 제천 행사이다. 핵심-근거: 12월 무렵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행사로, 제의와 정치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동예의 무천과 혼동하지 않는다. |
| 고구려의 동맹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구려의 대표적인 제천 행사이다. 핵심-근거: 10월 무렵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국가적 의례였다. 혼동-방지: 부여의 영고와 시기는 비슷하지만 시행한 나라가 다르다. |
| 삼한의 소도 — 핵심 내용은? | 정답: 삼한의 제사와 관련된 신성한 공간이다. 핵심-근거: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 여겨지며, 그 지역은 신성시되어 정치 지배자의 권한이 미치기 어려운 성격을 지녔다고 전한다. 혼동-방지: 단순한 마을이나 시장이 아니라 제의 중심지로 이해한다. |
| 철기 문화의 확산 — 핵심 내용은? | 정답: 여러 나라의 성장과 초기 국가 형성을 촉진한 기술 변화이다. 핵심-근거: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널리 퍼지면서 생산력과 군사력이 함께 높아졌다. 혼동-방지: 청동기 시대의 제한된 금속 사용과 구별한다. |
| 위만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조선에 들어와 정변을 일으키고 집권한 인물이다. 핵심-근거: 준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이후 위만 조선은 중계 무역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다. 혼동-방지: 단군 왕검과 같은 건국 전승의 인물로 보지 않는다. |
| 한 무제의 고조선 침공 — 핵심 내용은? | 정답: 위만 조선이 멸망하는 계기가 된 한나라의 공격이다. 핵심-근거: 우거왕 때 한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한 무제가 군사를 보내었고,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하였다. 혼동-방지: 위만의 집권 과정과 섞지 않는다. 이는 위만 조선 말기의 대외 전쟁이다. |
| 한사군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조선 멸망 뒤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이다. 핵심-근거: 낙랑군·임둔군·진번군·현도군이 설치되어 한의 지배와 중국식 행정 체계가 한반도 북부와 그 주변에 미쳤다. 혼동-방지: 고조선의 지방 조직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
| 낙랑토성 — 핵심 내용은? | 정답: 낙랑군과 관련된 대표적 유적이다. 핵심-근거: 한사군 지배의 실체를 보여 주는 자료로, 중국계 유물과 토착 문화의 접촉 양상을 살필 수 있다. 혼동-방지: 삼국 시대의 일반적인 성곽 유적과 바로 같게 보지 않는다. |
| 부여의 왕 아래 여러 부족 — 핵심 내용은? | 정답: 부여의 연맹 왕국적 정치 구조를 보여 주는 특징이다. 핵심-근거: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가축 이름이 붙은 여러 세력이 존재했고, 왕 아래에서 각기 기반을 가진 지배층이 함께 정치에 참여하였다. 혼동-방지: 후대 중앙집권 국가의 관료제와 같은 체제로 단정하지 않는다. |
| 고구려의 서옥제 — 핵심 내용은? | 정답: 혼인 풍속과 관련된 고구려의 제도이다. 핵심-근거: 남자가 혼인 뒤 일정 기간 처가 근처의 서옥에 머물다가 자녀가 자란 뒤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는 풍속으로 전해지며, 고구려의 가족·친족 관계를 보여 준다. 혼동-방지: 일반적인 신라·백제의 귀족 혼인 제도와 같은 뜻으로 쓰지 않는다. |
| 고구려의 태조왕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구려의 초기 성장과 왕권 강화를 이끈 군주이다. 핵심-근거: 옥저를 복속하는 등 세력을 넓히고 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 기반을 다져 국가 체제 정비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혼동-방지: 5세기 대외 팽창을 이끈 광개토대왕과 구별한다. |
| 고구려의 소수림왕 — 핵심 내용은? | 정답: 불교 수용과 제도 정비를 추진한 고구려의 왕이다. 핵심-근거: 4세기 후반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세우며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혼동-방지: 불교 공인의 시기와 주체를 백제·신라의 사례와 혼동하지 않는다. |
| 태학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구려의 국가 교육 기관이다. 핵심-근거: 소수림왕 때 설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유교 경전을 교육해 지배층 자제를 길러 국가 운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혼동-방지: 신라의 국학과 구별하며, 향가를 가르치는 기관도 아니다. |
| 광개토대왕비 — 핵심 내용은? | 정답: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고구려의 대외 관계를 전하는 비석이다. 핵심-근거: 장수왕 때 세워졌으며,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과 당시 주변 세력과의 관계가 새겨져 있어 고구려사와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혼동-방지: 단순한 추모비로만 보지 말고 정치·군사·외교 정보를 담은 금석문 사료로 이해한다. |
|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구려가 5세기 초에 대외 팽창을 크게 이룬 군사 활동이다. 핵심-근거: 후연을 격파하고, 백제를 공격하며, 신라를 도와 왜의 세력을 물리치는 등 만주와 한반도 북부·중부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 전성기를 열었다. 혼동-방지: 평양 천도 이후 한강 유역 진출을 본격화한 장수왕의 남진 정책과 구별한다. |
| 장수왕의 남진 정책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 남쪽으로 세력을 확대한 정책이다. 핵심-근거: 5세기 중엽 평양 천도 이후 백제를 압박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남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혼동-방지: 광개토대왕의 북방·대외 정복 활동과 이어지지만, 중심 거점과 진출 방향이 다르다. |
| 백제의 22담로 — 핵심 내용은? | 정답: 백제가 지방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운영한 지방 통치 체제이다. 핵심-근거: 웅진 시기 무령왕 무렵에 전국 여러 지역에 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혼동-방지: 신라의 소경이나 지방 행정 구획과 같은 제도로 보지 않는다. |
| 무령왕릉 — 핵심 내용은? | 정답: 백제 왕실 문화와 대외 교류 양상을 보여 주는 왕릉이다. 핵심-근거: 공주에 있는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중국 남조 계통의 벽돌무덤 양식과 묘지석·다양한 부장품이 확인되어 백제 문화의 수준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무덤의 조성 시기인 삼국 시대와 20세기 발굴 시점을 섞지 않는다. |
| 신라의 골품제 — 핵심 내용은? | 정답: 신라 사회의 정치·사회적 신분 제도이다. 핵심-근거: 성골·진골과 여러 두품으로 신분을 구분하여 관직 진출, 혼인, 복식, 주거 등 사회생활 전반을 규정하였다. 혼동-방지: 단순한 호칭 구분이 아니라 국가 운영과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 신분 질서이다. |
| 법흥왕의 불교 공인 — 핵심 내용은? | 정답: 신라가 불교를 국가적으로 인정한 사건이다. 핵심-근거: 6세기 전반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되어 왕권 강화와 사회 통합의 사상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혼동-방지: 불교가 처음 전해진 시점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전래와 공인은 구분해야 한다. |
| 신라의 화랑도 — 핵심 내용은? | 정답: 신라의 청소년 수련과 인재 양성을 담당한 조직이다. 핵심-근거: 귀족 청년을 중심으로 도의·수련·교양을 익히게 하였고,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전투 역량을 기르는 데에도 역할을 하였다. 혼동-방지: 단순한 군사 조직만으로 보지 말고 수련·교육 기능을 함께 이해한다. |
| 백제 금동관 — 핵심 내용은? | 정답: 백제 지배층의 위세와 공예 수준을 보여 주는 관 장식 유물이다. 핵심-근거: 얇은 금속판을 정교하게 가공한 장식성과 세련된 형태에서 백제 미술의 특징이 드러난다. 혼동-방지: 신라 금관처럼 출토 사례가 많고 형식이 화려하게 정형화된 유형과는 구별해 이해한다. |
|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 정책 — 핵심 내용은? | 정답: 호족 세력을 포섭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며 군사·외교를 병행해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정책이다. 핵심-근거: 혼인 정책과 사성 정책으로 호족을 포섭하고, 흑창 설치와 조세 감면 등으로 민심을 수습했으며, 후백제·신라와의 관계를 조정해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혼동-방지: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는 통일 이후 지방 통제를 위한 장치이므로, 후삼국 통일 과정의 포섭 정책과 그대로 같은 시점으로 섞어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 고려의 광종 노비안검법 — 핵심 내용은? | 정답: 불법적으로 노비가 된 양인을 조사해 해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한 정책이다. 핵심-근거: 광종은 호족이 사적으로 늘린 노비를 줄여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조세·역 부담 인구를 회복하려 하였다. 혼동-방지: 노비 제도 전체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바로잡은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 |
| 고려 2성 6부 체제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려가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정비한 중앙 행정 체제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아래 6부를 둔 관제이다. 핵심-근거: 정책의 심의와 행정 집행을 분담하는 구조를 통해 중앙 정치 운영의 틀을 마련하였다. 혼동-방지: 조선의 의정부·6조 체제와는 기관 명칭과 운영 방식이 다르므로 그대로 섞어 이해하면 안 된다. |
| 도병마사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려에서 군사 문제를 중심으로 국정의 중대사를 합의하던 회의 기구이다. 핵심-근거: 재추 회의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국방·대외 문제를 논의하였고, 뒤에는 일반 정무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혼동-방지: 단순한 작전 지휘 기관이라기보다 고위 관료 회의체의 성격이 강했음을 구분해야 한다. |
| 교정도감 — 핵심 내용은? | 정답: 최씨 무신 정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로, 정권 운영의 중심이 된 기관이다. 핵심-근거: 최충헌 이후 교정별감이 이를 장악해 정치·군사 등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혼동-방지: 고려의 일반 행정 관청이 아니라 최씨 정권의 사적 집권 기구라는 점이 핵심이다. |
| 고려 원 간섭기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려가 원의 강한 간섭 아래 자주성이 크게 약화된 시기이다. 핵심-근거: 원과의 강화 이후 왕실의 혼인 관계, 내정 간섭, 공물 부담, 영토 일부 상실 등이 이어졌고, 부마국적 성격을 띠었다. 혼동-방지: 고려가 완전히 멸망해 원의 직접 통치 아래 들어간 것은 아니며, 왕조는 유지된 채 간섭을 받은 시기로 이해해야 한다. |
| 쌍성총관부 — 핵심 내용은? | 정답: 원이 고려의 동북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 기구이다. 핵심-근거: 몽골 침입 뒤 설치되어 화주를 중심으로 한 동북 지방을 지배하였고, 공민왕 때 공격받아 수복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혼동-방지: 고려의 지방 행정 조직이 아니라 원의 직할 통치 거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 고려의 향리 제도 — 핵심 내용은? | 정답: 지방의 토착 세력을 향리로 편제하여 군현의 행정 실무를 맡긴 제도이다. 핵심-근거: 향리는 지방관을 보좌해 조세 징수와 역 동원 등 지역 행정을 담당했고, 고려는 기인 제도 등으로 이들을 통제하였다. 혼동-방지: 중앙의 문벌 귀족이나 조선 후기 향촌의 좌수·별감과 구분해야 한다. |
| 벽란도와 국제 무역 — 핵심 내용은? | 정답: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중심으로 송과 일본, 여진, 대식국 상인 등이 왕래한 고려의 대외 무역이다. 핵심-근거: 개경과 가까운 국제 무역항을 통해 비단·약재·서적 등이 들어오고 종이·인삼·나전칠기 등이 거래되었다. 혼동-방지: 지방의 정기 시장인 장시와 달리 벽란도는 고려의 국제 해상 교역을 보여 주는 항구이다. |
| 녹과전 — 핵심 내용은? | 정답: 1271년 원종 12년에 개경 환도 뒤 관료의 녹봉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경기 지역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한 제도이다. 핵심-근거: 원 간섭기 이전인 고려 후기의 토지 제도로, 현직 관료의 경제 기반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혼동-방지: 1391년 공양왕 때 마련된 과전법과 시기·지급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
| 문벌귀족 사회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려 중기에 형성된 유력 가문 중심의 지배 질서이다. 핵심-근거: 음서, 공음전, 유력 가문 간 혼인 관계를 바탕으로 권력과 재산을 세습하며 정치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혼동-방지: 단순히 귀족이 존재한 사회가 아니라, 가문 중심의 특권이 제도적으로 굳어진 지배 구조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
| 원간섭기 권문세족 — 핵심 내용은? | 정답: 원 간섭기에 원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권력과 대토지를 장악한 고려의 지배 세력이다. 핵심-근거: 불법적 토지 겸병과 노비 확대, 정치 권력 독점으로 사회 모순을 심화시켰다. 혼동-방지: 고려 중기 문벌귀족과 이어지는 면이 있지만, 원 간섭기라는 대외 조건 속에서 성장한 세력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
| 과전법 — 핵심 내용은? | 정답: 1391년 공양왕 때 시행된 토지 제도로, 경기 지역의 토지를 관리에게 지급하여 수조권을 보장한 제도이다. 핵심-근거: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하고 신진사대부 중심의 새로운 관료 체제를 뒷받침하였다. 혼동-방지: 토지 소유권을 관리에게 완전히 넘긴 제도가 아니라 수조권을 지급한 제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 전민변정도감 — 핵심 내용은? | 정답: 1366년 공민왕 15년 신돈을 등용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조사·시정한 개혁 기구이다. 핵심-근거: 불법 점유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회복하려 하였다. 혼동-방지: 광종의 노비안검법과 달리 공민왕 대 권문세족의 불법 토지·노비 점유를 바로잡은 기구이다. |
| 몽골과의 강화도 천도 — 핵심 내용은? | 정답: 1232년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맞서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긴 조치이다. 핵심-근거: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활용해 몽골 기병의 공격을 견디며 장기 항전을 도모하였다. 혼동-방지: 단순한 피난이 아니라 대몽 항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천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
| 직지심체요절 — 핵심 내용은? | 정답: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불교 서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핵심-근거: 고려 후기 금속활자 인쇄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대표적 자료이다. 혼동-방지: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며, 내용은 불교 서적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
| 청자 운학문 매병 — 핵심 내용은? | 정답: 구름과 학 무늬를 장식한 고려청자의 대표적 매병이다. 핵심-근거: 비색과 상감 기법, 우아한 형태가 어우러져 고려 귀족 문화와 도자 기술의 수준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조선 백자나 분청사기와 다른 고려청자의 대표 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 |
| 금속활자 인쇄술 — 핵심 내용은? | 정답: 고려는 13세기부터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핵심-근거: 『직지심체요절』 같은 유물을 통해 고려 후기 활자 인쇄 문화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혼동-방지: 목판 인쇄와 같은 인쇄 문화의 한 형태가 아니라, 금속 활자를 활용한 별도의 기술 발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
| 교장 — 핵심 내용은? | 정답: 의천이 송·요·일본 등에서 모은 불교 경전의 주석서를 정리해 간행한 불교 문헌 집성이다. 핵심-근거: 교장도감을 설치해 판각·간행했으며 고려 불교 교학과 목판 인쇄의 발전을 보여 준다. 혼동-방지: 불경 본문을 모은 대장경과 달리 교장은 여러 종파의 주석서를 모은 자료이다. |
| 공노비 — 핵심 내용은? | 정답: 국가나 관청에 소속된 노비이다. 핵심-근거: 관청 수공업, 궁중 업무, 각종 공역 등에 동원되며 국가 운영의 노동력을 구성하였다. 혼동-방지: 개인이나 사적인 가문에 예속된 사노비와 달리, 소속 주체가 국가라는 점을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
| 훈구파 — 조선 전기 권력 구조의 핵심은? | 정답: 조선 건국과 왕권 강화에 공을 세운 공신·관료 중심의 정치 세력이다. 핵심-근거: 개국 공신과 왕위 계승에 기여한 세력이 관직과 토지, 공신전 등의 기반을 바탕으로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였다. 혼동-방지: 사림은 주로 15세기 성종 대부터 중앙 정치에 진출한 성리학적 신진 유학 세력으로, 훈구와 시기·기반·성격이 다르다. |
| 사화 — 조선 전기 사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 정답: 조선 전기 훈구와 사림의 정치적 대립 속에서 주로 사림이 큰 화를 입은 사건들이다. 핵심-근거: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대표적이며, 언론 활동과 인사 문제, 왕실 관련 문제가 얽혀 발생하였다. 혼동-방지: 모든 사화를 단순히 왕위 다툼으로만 볼 수 없으며, 사림의 성장과 훈구 중심 질서의 충돌이라는 맥락이 중요하다. |
| 홍문관 — 조선 전기 언론 기능의 핵심 기관은? | 정답: 경연을 담당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며 서적의 교정과 간언 기능을 수행한 학술·언론 기관이다. 핵심-근거: 홍문관 관원은 경연에 참여하고 왕에게 유교적 통치 이념과 정책을 건의하였다. 혼동-방지: 사초 작성은 주로 예문관의 사관이 담당하였으므로, 홍문관의 기능과 혼동하면 안 된다. |
| 의정부 서사제 — 조선 전기 국정 운영의 핵심 원리는? | 정답: 6조의 업무를 의정부가 먼저 논의한 뒤 국왕에게 아뢰어 시행하던 국정 운영 방식이다. 핵심-근거: 재상 중심의 합의가 중시되는 운영 구조로, 조선 초 태종 이후 정비되고 세종 때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혼동-방지: 6조가 바로 국왕에게 보고하는 6조 직계제와 구별해야 하며, 양자의 차이는 왕권과 재상권의 운영 방식에 있다. |
| 대간 — 조선 전기 언론 관료의 역할은 무엇인가? | 정답: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으로서 왕과 관리의 잘못을 비판하고 감찰·간쟁하던 언론 기관의 구성원이다. 핵심-근거: 관리의 비행을 탄핵하고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혼동-방지: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6조 관원과 달리, 대간은 비판과 견제 기능이 중심이다. |
| 경재소 — 조선 전기 지방 통제 장치는 무엇인가? | 정답: 서울에 설치되어 지방 유향소와 연결되며 이를 통제하던 기구이다. 핵심-근거: 중앙의 고위 관직에 오른 지방 출신 인물들이 해당 지역 유향소를 장악·관리하는 통로로 기능하였다. 혼동-방지: 유향소가 지방 사족의 향촌 자치 조직이라면, 경재소는 서울에서 이를 통제하는 장치라는 점이 핵심이다. |
| 공법 — 조선 전기 조세 제도의 핵심 개편은? | 정답: 전세를 토지의 비옥도와 풍흉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한 세종 대의 조세 제도 개편이다. 핵심-근거: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논의되었고,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에 따라 전세 부과 기준을 정비하였다. 혼동-방지: 공법은 토지에 부과하는 전세 제도의 개편이며, 군역이나 공납 제도와는 구별해야 한다. |
| 교린 정책 — 조선 전기 외교의 기본 방침은 무엇인가? | 정답: 명과의 사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여진 등 주변 세력과는 교린을 추구한 외교 방침이다. 핵심-근거: 조공·책봉 질서 속에서 명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주변과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전개하였다. 혼동-방지: 사대교린은 각각 대상과 방식이 다르며, 교린만으로 조선 외교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
| 비변사 — 조선 후기 비상 통치기구의 성격은? | 정답: 국방 문제를 논의하던 기구에서 발전해 조선 후기에는 국정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최고 비상기구이다. 핵심-근거: 중종 대 설치된 뒤 임진왜란을 거치며 기능이 확대되고 상설화되어 군사·외교·재정 등 여러 현안을 다루었다. 혼동-방지: 비변사를 임진왜란 이후에 새로 설치된 기구로 보면 부정확하며, 후기에는 의정부보다 실제 권한이 커진 측면이 있었다. |
| 환국 — 조선 후기 정권 교체의 방식은 무엇인가? | 정답: 국왕의 주도로 특정 붕당을 몰아내고 다른 붕당으로 정권을 급격히 교체한 정치 형태이다. 핵심-근거: 숙종 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이 대표적이며, 붕당 간 대립과 왕권 운영 방식이 맞물려 나타났다. 혼동-방지: 일반적인 붕당 간 경쟁과 달리, 환국은 국왕 주도의 급격한 권력 재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
| 대동법 — 조선 후기 조세 제도 개혁의 핵심은? | 정답: 공납을 특산물 대신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동전 등으로 납부하게 한 제도이다. 핵심-근거: 공납의 폐단을 줄이고 공인의 활동을 통해 상품 유통과 상업 발달을 촉진하였다. 혼동-방지: 전세 개혁이 아니라 공납 개혁이며,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작되어 이후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
| 상품 화폐 경제 — 조선 후기 경제 구조의 변화는? | 정답: 생산물의 상품화와 유통 확대, 화폐 사용의 증가가 함께 나타난 경제 변화이다. 핵심-근거: 농업 생산력 증대, 장시의 발달, 사상과 공인의 성장으로 시장 거래가 활발해졌다. 혼동-방지: 자급자족 경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농업 중심 구조 속에서 상업과 화폐 유통이 확대된 것이다. |
| 공인 — 조선 후기 관허 상업의 핵심 주체는? | 정답: 국가의 수요 물품을 조달하던 허가 상인이다. 핵심-근거: 대동법 시행 뒤 관청에 바칠 공물을 대신 조달하면서 상업 활동의 폭을 넓혔다. 혼동-방지: 일반 장시 상인과 달리 국가 조달 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인층이다. |
| 서원 — 조선 후기 사상과 지방 사회의 중심은 무엇인가? | 정답: 사림이 선현을 제향하고 유생을 교육하던 사설 교육·제향 기관이다. 핵심-근거: 중종 때 이후 확산되었고, 지방 사족의 학문 활동과 여론 형성의 거점이 되었다. 혼동-방지: 향교는 국가가 세운 관학이고, 서원은 사림이 주도한 사설 기관이다. |
| 실학 — 조선 후기 사상 개혁의 핵심 흐름은? | 정답: 현실 문제 해결과 사회 개혁, 실용적 학문을 중시한 사상 경향이다. 핵심-근거: 토지 제도, 농업 생산, 상공업 진흥, 국방과 행정 개혁 등 현실 정책에 대한 관심이 컸다. 혼동-방지: 성리학을 전면 부정한 사조라기보다,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며 현실 대응을 강화하려 한 흐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
| 북학론 — 조선 후기 대외 인식의 변화는 무엇인가? | 정답: 청의 선진 문물과 기술을 배워 경제와 국력을 키우자고 한 주장이다. 핵심-근거: 연행 경험을 바탕으로 박제가·박지원 등이 상공업 진흥과 기술 수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혼동-방지: 청을 문화적으로 무조건 숭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배울 점을 취하자는 실용적 인식이었다. |
| 대전회통 — 조선 후기 법전 체계의 완성은 무엇인가? | 정답: 고종 때 편찬된 법전으로, 조선의 법령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것이다. 핵심-근거: 『경국대전』 이후 이어진 법전 정비의 흐름을 마무리하며 조선 말기 통치 기준이 되었다. 혼동-방지: 영조 대의 『속대전』·『대전통편』보다 뒤에 나온 편찬물이며, 시기는 조선 후기 말~개항기와 맞닿아 있다. |
| 동국문헌비고 — 조선 후기 지식 정리 사업의 의미는? | 정답: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분야별로 정리한 관찬 백과류 서적이다. 핵심-근거: 영조 때 편찬되어 제도·군사·지리·예악 등 국가 운영과 관련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혼동-방지: 개인 문집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리 사업이며, 실무 참고서 성격이 강하다. |
| 초계문신제 — 조선 후기 인재 양성 제도의 핵심은? | 정답: 정조가 젊은 문신을 선발해 규장각에서 재교육한 제도이다. 핵심-근거: 경학과 정책 능력을 길러 개혁 정치를 뒷받침할 인재를 육성하려 하였다. 혼동-방지: 과거제 자체가 아니라, 이미 관료가 된 문신 가운데 일부를 뽑아 추가로 훈련한 제도이다. |
| 임진왜란 — 조선 후기 사회와 제도를 바꾼 전쟁은? | 정답: 1592년에 시작된 일본의 침략 전쟁이다. 핵심-근거: 조선 사회와 국방 체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비변사의 기능 강화와 군사 제도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혼동-방지: 병자호란과 다른 전쟁이며, 시기는 조선 전기 말~조선 후기 이행기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어떤 의미의 조약인가? | 정답: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핵심-근거: 1882년 미국과 체결되었으며, 조약문에는 치외법권(영사 재판권)과 최혜국 대우 등 불평등 조약 요소가 포함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독일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확대하였다. 혼동-방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 근대 조약은 강화도 조약이고, 이 조약은 서양 국가와의 첫 조약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 이후의 청 상인 활동 — 무엇이 달라졌나? | 정답: 청 상인의 조선 내 상업 활동과 상권 장악이 크게 확대되었다. 핵심-근거: 인천·한성 등지를 중심으로 청 상인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청 상인에게 유리한 통상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조선 상인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외세의 경제 침투가 심화되었다. 혼동-방지: 단순한 교역량 증가만이 아니라, 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와 조선 상권의 위축이라는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
| 별기군 — 어떤 성격의 군대였나? | 정답: 일본식 훈련을 받은 신식 군대이다. 핵심-근거: 1881년 설치되어 근대식 군사 훈련과 신식 무기 운용을 도입하였다. 구식 군인에 비해 급료와 대우가 좋아 군 내부의 불만을 키웠고, 이는 임오군란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혼동-방지: 의병이나 지방군이 아니라 정부가 육성한 신식 군대이며, 임오군란 이후의 군제 개편과도 구별해야 한다. |
| 갑신정변 — 무엇을 목표로 한 개혁 시도였나? | 정답: 급진 개화파가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 근대 국가 체제를 세우려 한 정변이다. 핵심-근거: 1884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켜 정강 14개조를 발표하고 문벌 폐지, 능력 본위 인재 등용, 재정 일원화 등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다. 혼동-방지: 갑오개혁처럼 정부가 비교적 장기간 추진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소수 급진 개화파의 단기 정변이다. |
| 독립문 —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물인가? | 정답: 청에 대한 사대 관계를 벗어나 자주독립국임을 상징한 기념물이다. 핵심-근거: 독립협회의 주도로 1890년대 후반 세워졌으며,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건립되었다. 조선이 청의 속방이 아니라 자주국가임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려는 상징성을 지녔다. 혼동-방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한 건축물이 아니라, 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남을 상징한다. |
| 동학 농민 운동의 요구 — 무엇이 핵심이었나? | 정답: 반봉건·반외세를 내세운 사회 개혁 요구이다. 핵심-근거: 1894년 고부에서 시작된 봉기와 전주 화약 이후의 집강소 활동, 폐정개혁안 등을 통해 탐관오리 처벌, 신분 차별 시정, 외세 배격 등을 주장하였다. 농민의 생활 개선과 자치 질서 회복 요구가 함께 나타났다. 혼동-방지: 단순한 종교 운동으로만 볼 수 없으며, 사회 개혁과 외세 저항이 결합된 농민 운동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
| 우금치 전투 — 왜 전환점이 되었나? | 정답: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크게 패배한 결정적 전투이기 때문이다. 핵심-근거: 1894년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은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등에 밀려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동학 농민 운동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각지에서 진압이 본격화되었다. 혼동-방지: 동학 농민 운동의 출발점이 아니라, 재봉기 이후 몰락을 상징하는 전투이다. |
| 홍범 14조 — 어떤 원칙을 담았나? | 정답: 갑오개혁기의 국가 운영 기본 원칙을 제시한 개혁 강령이다. 핵심-근거: 1894년 제시되어 청에 대한 의존 관계 청산, 왕실 사무와 국가 사무의 구분, 재정 일원화,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등의 방향을 밝혔다. 갑오개혁이 지향한 근대 국가 원리를 압축해 보여 준다. 혼동-방지: 완결된 단일 법전이 아니라 개혁의 기본 강령이며, 대한제국기의 대한국 국제와도 구별해야 한다. |
| 광무개혁 — 대한제국은 무엇을 추진했나? | 정답: 황권 강화를 바탕으로 근대 국가 체제 정비를 추진하였다. 핵심-근거: 대한제국은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 상공업 진흥, 군제 정비, 근대 시설 확충 등을 추진하였다. 다만 열강의 침탈과 재정 한계로 개혁은 큰 제약을 받았다. 혼동-방지: 갑오개혁보다 황제권 중심 성격이 강하며, 시기도 대한제국 수립 이후라는 점을 구별해야 한다. |
| 원수부 — 대한제국 군제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 | 정답: 1899년 대한제국이 황제의 군령권을 강화하기 위해 궁중에 설치한 최고 군령 기구이다. 핵심-근거: 황제를 대원수로 삼고 군부와 중앙·지방 부대를 지휘·감독하며 군대 편제와 무관 양성을 추진하였다. 혼동-방지: 개항 초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 달리 원수부는 대한제국기 황제 중심 군제의 지휘 기구이다. |
| 을사늑약 — 국권 피탈의 시작으로 왜 보는가? | 정답: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강제 조약이다. 핵심-근거: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에 강요하여 체결한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보호국화되었다. 이어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내정 간섭과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었다. 혼동-방지: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대등하고 합법적인 자발적 조약으로 보기 어렵고, 강압 아래 체결된 불법적 성격이 크다. |
| 헤이그 특사 파견 — 어떤 의미의 외교 행동이었나? | 정답: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한 비밀 외교 시도이다. 핵심-근거: 1907년 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비밀리에 파견하여 일본의 침탈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려 했다. 특사들은 회의에 정식 참가하지는 못했고, 이후 고종 퇴위와 한일 신협약 체결의 빌미가 되었다. 혼동-방지: 국제회의에서 공식 발언에 성공한 사건으로 보기 어렵고, 외교적 성과는 제한적이었으나 항일 외교 투쟁의 상징적 의미가 크다. |
| 간도 참변 — 어떤 사건이었나? | 정답: 1920년 일본군이 간도 지역 한인 사회를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핵심-근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군은 독립군 토벌을 명분으로 만주 간도 지역에 출병해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는 독립군뿐 아니라 한인 사회 전체를 겨냥한 보복성 탄압이었다. 혼동-방지: 국내에서 일어난 항일 의거나 전투가 아니라, 만주 간도 지역 한인 사회가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어떤 역할을 했나? | 정답: 3·1 운동 이후 수립된 독립운동의 통합적 구심점 역할을 한 망명 정부이다. 핵심-근거: 1919년 상하이를 중심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연통제와 교통국 등을 통해 국내외를 연결하고, 외교 활동과 군사 활동을 추진하며 독립운동을 총괄하려 했다.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중심 조직으로 기능했다. 혼동-방지: 국내의 행정기관이 아니라 해외에 수립된 망명 정부이며,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라 독립운동 최고 정치 조직이었다. |
| 무단통치 — 식민지 지배의 어떤 방식인가? | 정답: 일본이 헌병경찰과 강압적 통제에 의존해 조선을 지배한 초기 식민 통치 방식이다. 핵심-근거: 1910년대 조선 총독은 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헌병경찰 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 통제, 즉결 처분 등을 통해 식민 지배를 강행했다. 이는 공포와 폭력을 앞세운 지배 체제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혼동-방지: 문화 통치와 구별해야 하며, 핵심은 군사적·경찰적 강압 통치이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다. |
| 회사령 — 무엇을 제한했나? | 정답: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묶어 기업 활동을 통제한 식민지 경제 정책이다. 핵심-근거: 1910년 제정된 회사령은 조선에서 회사를 설립할 때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여 기업 활동을 제약했다. 이는 일본 자본 중심의 식민지 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조선인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작용했다. 혼동-방지: 산업을 장려한 제도가 아니라 식민지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규제책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
| 조선어 연구회 — 어떤 학술 운동의 중심이었나? | 정답: 조선어와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려 한 민족어 연구 운동의 중심 단체였다. 핵심-근거: 1921년 조직된 조선어 연구회는 한글 연구와 보급 운동을 추진하며 민족어 보존에 힘썼고, 뒤에 조선어학회로 발전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국어학 발전과 민족 정체성 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혼동-방지: 정치 투쟁 단체가 아니라 학술·문화 운동 단체이며, 이후 조선어학회로 이어진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
| 봉오동 전투 — 어떤 의미의 승리였나? | 정답: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대표적 무장 독립전쟁의 승리이다. 핵심-근거: 1920년 만주 봉오동 일대에서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유인·격파하였다. 이 전투는 독립군의 전투 역량을 널리 알리고 이후 무장 투쟁의 사기를 높인 상징적 승리였다. 혼동-방지: 국내 의열 투쟁이 아니라 만주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군의 무장 전투이며, 청산리 전투와는 별개의 전투이다. |
| 의열단 — 어떤 투쟁 방식을 택했나? | 정답: 식민 통치 기관과 요인을 직접 공격하는 비밀 결사 방식의 의열 투쟁을 택했다. 핵심-근거: 1919년 김원봉 등이 조직한 의열단은 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등 식민 통치의 핵심 기관을 폭탄 투척과 암살 시도로 타격하려 했다. 이는 직접 행동을 통한 항일 무장 투쟁 노선을 대표한다. 혼동-방지: 공개 계몽 단체나 대중 정치 단체가 아니라 비밀 조직의 직접 행동 중심 단체라는 점이 핵심이다. |
| 방정환 — 어린이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 정답: 어린이의 인격과 권리를 강조하며 어린이 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이다. 핵심-근거: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을 널리 쓰고, 1920년대 어린이날 제정과 잡지 발간 등 아동 문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혼동-방지: 정당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아동 문화·계몽 운동가이며, 어린이 인권 의식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
| 대한민국 헌법 제1호 — 현대사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 정답: 1948년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다. 핵심-근거: 1948년 제헌 국회가 헌법을 제정·공포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밝히고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를 제시하였다. 혼동-방지: 1919년의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구별해야 하며,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헌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 4·19 혁명 — 어떤 정치 변화를 이끌었나? | 정답: 부정선거에 항의한 학생과 시민의 저항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한 민주 혁명이다. 핵심-근거: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4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거세졌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였다. 이후 제2공화국이 수립되어 정치 체제 변화로 이어졌다. 혼동-방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시민과 학생이 주도한 민주 혁명이며, 5·16 군사 정변과 구별해야 한다. |
자주 묻는 질문
수능 한국사 절대평가 대비에 어떤 순서로 쓰면 좋나요?
먼저 연대 카드를 통해 시대 흐름을 만들고, 다음으로 의의 카드를 학습하세요. 틀린 카드의 시대 태그를 모아 교과서나 공식 교육과정 자료에서 앞뒤 맥락을 다시 확인하면 효율적입니다.
무료 플랜에서도 덱 전체를 가져올 수 있나요?
네. 게시된 덱을 그대로 가져오는 과정에서는 새 AI 생성을 실행하거나 AI 크레딧을 쓰지 않으므로 무료 플랜에서도 전체 카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같은 덱을 다시 가져오면 카드가 중복되나요?
아니요. 이미 같은 앞면과 뒷면을 가진 카드는 건너뛰고 새로 추가된 카드만 들어갑니다. 반복적인 삭제와 재가져오기를 막기 위해 한 계정에서 같은 Memly 큐레이션 덱을 가져올 수 있는 횟수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삭제 후 다시 가져오는 경우를 포함해 같은 Memly 큐레이션 덱은 계정당 평생 3회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가져온 카드도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나요?
네. 가져오기가 끝나면 사용자의 카드가 되므로 설명을 보완하거나 태그를 바꾸고, 필요 없는 카드를 삭제하거나 다른 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웹과 모바일 앱에서 함께 학습할 수 있나요?
네. 덱은 기기가 아니라 Memly 계정에 추가됩니다. 같은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웹과 iOS·Android 앱에서 학습 기록과 덱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편집 기준과 출처
Memly 편집팀이 아래 1차 자료로 범위와 용어를 확인한 뒤 카드 내용을 독립적으로 작성·검수합니다.
수능 한국사 핵심 200|개념·연표 암기 덱
무료 플랜 그대로 전체 카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가져올 때 AI 생성을 실행하지 않아 AI 크레딧도 줄지 않습니다. 추가하려면 Memly 계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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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제휴하지 않은 Memly의 독립 큐레이션 자료이며 실제 문항을 싣지 않았습니다. 기준일 2026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