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 심화 500|한국사능력검정 핵심 암기 덱
전 시대의 고유 항목 500개를 설명과 구분 포인트로 완성하는 심화 덱.
무료 플랜 그대로 전체 카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가져올 때 AI 생성을 실행하지 않아 AI 크레딧도 줄지 않습니다. 추가하려면 Memly 계정이 필요합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는 연표뿐 아니라 관련 인물, 제도의 목적, 경제·사회 변화, 문화재와 사료의 시대까지 구분해야 합니다. 이 덱은 선사·고대·고려·조선 전기·조선 후기와 개항기·일제강점기·현대에서 서로 다른 500개 사건·제도·인물·조직·문화재·사료를 선정했습니다. 각 항목은 설명과 인접 개념의 구분 포인트를 한 장에 담았고, 같은 사실의 질문 방향만 바꾼 반복 카드를 넣지 않았습니다. 가져오면 덱 전체가 간격 반복 일정에 올라갑니다. 이미 아는 항목은 출제 간격이 늘어나 눈앞에서 사라지고, 계속 흔들리는 것만 다시 돌아옵니다. 줄어드는 것은 500개를 한 번 훑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남지 않은 항목의 수입니다.
추가하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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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누르면 Memly가 열리고 카드가 통째로 내 덱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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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상태에 맞춰 카드마다 다음에 언제 나올지가 정해집니다.
- 3
추가한 뒤에는 내 카드이므로 수정, 삭제, 정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수록 카드
전체 500장 중 대표 카드 100장을 보여 줍니다.
| 앞면 | 뒷면 |
|---|---|
| 구석기 시대의 이동 생활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이동하며 사냥과 채집을 하던 생활 방식입니다. 설명: 구석기인은 먹을거리를 찾아 강가나 동굴, 바위 그늘 등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고, 주먹도끼 같은 뗀석기를 사용했습니다. 구분-포인트: 정착 농경 생활이 아니라 이동 생활, 토기·간석기가 아니라 사냥·채집과 뗀석기 중심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 움집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신석기 시대 이후 정착 생활과 관련된 대표적 주거 형태입니다. 설명: 땅을 일정 부분 파고 그 위를 덮어 만든 집으로,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널리 나타납니다. 구분-포인트: 구석기의 이동 생활 임시 거처와 달리, 정착 생활을 보여 주는 주거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 고인돌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입니다. 설명: 큰 돌을 이용해 만든 무덤으로, 당시 사회의 권력 집중과 노동력 동원 능력을 보여 줍니다. 구분-포인트: 청동기 시대 사회 분화와 지배층의 존재를 보여 주는 대표 유적입니다. |
| 요동·만주 세력권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조선의 활동 범위를 이해할 때 함께 보아야 할 북방 지역입니다. 설명: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뿐 아니라 요동 지역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 정치 세력으로 이해됩니다. 구분-포인트: 활동 무대를 한반도 내부에만 한정하지 말고, 요동을 포함한 북방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
| 부여의 5부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부여의 지배층 편제를 보여 주는 정치 조직입니다. 설명: 마가·우가·저가·구가와 중앙의 대사자·사자 등의 관직 체계가 있었으며, 여러 세력이 연맹적으로 결합한 모습을 보입니다. 구분-포인트: 삼한의 신지·읍차와 같은 체계와 혼동하지 말고, 부여의 연맹적 정치 조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 동예의 책화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동예의 경계 침범에 대한 배상 풍습입니다. 설명: 다른 집단의 영역을 침범하면 변상하게 하여 각 집단의 생활권과 질서를 지키려 한 관습입니다. 구분-포인트: 일반 형벌 조항이 아니라, 경계 의식과 공동체 질서를 보여 주는 풍습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 고이왕의 관등제 정비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이왕의 관등제 정비 설명: 백제 고이왕은 6좌평과 16관등을 마련하고 관복의 색을 정하는 등 중앙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이는 왕권 강화와 관료 조직의 성장을 보여 준다. 구분-포인트: 온조의 건국 전승과 달리, 고이왕의 개혁은 백제가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의 제도 정비이다. |
| 태학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구려의 국가 교육 기관입니다. 설명: 태학은 소수림왕 때 설립된 것으로 전하며, 유교 경전을 가르쳐 지배층 자제를 교육하던 관학 성격의 기관입니다. 구분-포인트: 불교 사찰이나 민간 교육 기관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한 교육 기관입니다. |
| 장수왕의 남진 정책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구려의 대남 진출 정책입니다. 설명: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뒤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 한강 유역 진출을 본격화했고, 백제와 신라를 압박했습니다. 구분-포인트: 북방 방어 중심 정책이 아니라 평양 천도와 연결된 대남 팽창 정책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 백제의 관산성 전투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백제와 신라의 동맹 관계가 무너진 결정적 전투입니다. 설명: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전사했고, 한강 유역을 둘러싼 백제와 신라의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구분-포인트: 나당 연합의 삼국 통일 전쟁보다 앞선 사건이며 백제·신라 동맹의 붕괴를 보여 줍니다. |
| 미천왕의 낙랑군 축출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구려가 낙랑군을 몰아내며 대외적 자립을 강화한 사건입니다. 설명: 미천왕은 4세기 초 낙랑군을 축출하여 한사군 세력을 한반도 북부에서 약화시켰고, 고구려의 영역 확대와 성장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구분-포인트: 한사군의 설치 시기와 구분되며, 외래 군현 세력을 몰아낸 고구려의 공세적 성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 신라의 상대등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신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최고 관직입니다. 설명: 상대등은 귀족 회의와 정치 운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관직으로, 신라의 귀족 정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구분-포인트: 지방관이나 군사 지휘관 일반이 아니라 중앙 귀족 사회의 핵심 관직입니다. |
| 널무덤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나무로 관을 짜서 시신을 안치한 무덤으로,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묘제이다. 설명: 널무덤은 목관을 사용하는 방식의 무덤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며 초기 사회의 장례 문화를 보여 준다. 구분-포인트: 고인돌처럼 거대한 덮개돌을 쓰는 묘제와 구별하며, 특정 시기를 철기 시대로만 한정해 단정하지 않는다. |
| 반량전의 출토와 대외 교류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중국계 화폐인 반량전의 출토는 고조선과 초기 철기 문화 단계의 대외 교류를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설명: 반량전과 명도전 등 중국 화폐의 출토는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구분-포인트: 출토 사실을 남부 삼한에서 화폐가 일반적으로 유통되었다는 직접 증거로 확대해 해석하지 않습니다. |
| 단군 신앙의 형성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숭배하는 관념과 의례가 후대에 형성·전개된 현상이다. 설명: 단군에 대한 인식은 고조선 당시의 실증 가능한 국가 제사 체계로 단정하기보다, 고려·조선을 거치며 국가·민족의 시원 의식과 결합해 강화된 측면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구분-포인트: 단군 신화를 고조선 당대의 확정된 신앙 체계로 단정하지 말고, 후대의 계승과 재해석 과정까지 구분한다. |
| 상·대부·장군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상·대부·장군 설명: 상, 대부, 장군은 고조선의 지배층과 관직 체계를 보여 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이 단순한 부족 사회를 넘어 일정한 통치 조직을 갖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분-포인트: 제정일치 사회는 정치와 제사의 결합이라는 사회 성격을 설명하고, 상·대부·장군은 지배층 명칭과 통치 체계에 초점을 둔다. |
| 한성백제의 위세품 교류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한성백제가 주변 지역 및 중국·왜와의 관계 속에서 위세품을 주고받으며 권위를 과시한 현상이다. 설명: 한성백제는 대외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과 고급 공예품을 수용·전파하였고, 이는 왕권과 지배층의 위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단순한 상업 교역만이 아니라 외교와 지배 질서 형성에 활용된 위세품 교류라는 점을 본다. |
| 부여의 경제 기반과 말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부여는 농경을 바탕으로 하면서 말 사육을 포함한 목축 요소도 지닌 경제 구조를 보였다. 설명: 부여는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농업이 발달하였고, 말·소 등 가축의 사육도 이루어져 북방적 생활 요소와 결합된 모습을 보인다. 구분-포인트: 목축만으로 설명하지 말고 농경이 중요한 기반이었다는 점을 함께 본다. |
| 진왕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진왕 설명: 진왕은 삼한 전체의 공통된 지배자를 뜻하는 명칭으로 전한다. 실제 지배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삼한 사회에 연맹적 질서가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구분-포인트: 신지·읍차가 각 소국 지배자의 칭호라면, 진왕은 삼한 전체와 관련된 상징적 최고 지배 명칭으로 이해된다. |
| 가야권의 해상 네트워크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가야가 남해안 해상 교통을 바탕으로 한반도 남부와 왜, 중국 남조 등과 교류망을 형성한 점이다. 설명: 가야 여러 세력은 해상로를 활용하여 철, 토기, 각종 공예품을 유통하고 외교 관계도 전개하였다. 구분-포인트: 가야의 성격을 내륙 지배보다 해상 교류와 연결망 속에서 파악한다. |
| 가야 연맹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가야 연맹 설명: 가야 연맹은 낙동강 유역의 여러 나라가 형성한 연맹체를 말한다. 통일 국가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철기 생산과 해상 교류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다. 구분-포인트: 금관가야·대가야는 연맹 안의 중심 세력이고, 가야 연맹은 이들을 아우르는 전체 정치 집단을 가리킨다. |
| 황룡사 중심 불교 문화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황룡사가 신라 왕경에서 국가적 위상을 지닌 대사찰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설명: 황룡사는 진흥왕 대에 창건되어 국가 불교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왕실의 권위와 호국 이념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구분-포인트: 일반 사찰이 아니라 국가적 의례와 왕권 상징성을 지닌 사찰로 이해한다. |
| 신라의 관료전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관료전은 통일 신라에서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로, 관료층의 경제 기반을 마련해 준 제도이다. 설명: 신문왕은 귀족 세력 약화를 위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관료전은 조세를 거둘 수 있는 토지였으나, 일반적으로 녹읍처럼 주민을 직접 지배하는 권한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구분-포인트: 삼국 시기 전체의 제도로 넓히지 말고 통일 신라의 제도로 파악하며, 녹읍과 차이를 구분한다. |
| 수리 시설의 발달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저수지와 제방 등 수리 시설을 정비하여 농업 생산을 안정시킨 현상이다. 설명: 벼농사 확대와 함께 물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국가와 지역 사회는 제방과 저수지를 축조·보수하였다. 이는 생산력 증대와 공동체 동원 능력을 함께 보여 준다. 구분-포인트: 농업 발달을 단순 경작 기술만으로 보지 말고 수리 시설 정비와 연결해 이해한다. |
| 태조 왕건 — 고려 개창의 정통성은 무엇으로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인물입니다. 설명: 태조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뒤, 후백제를 멸하고 신라의 항복을 받아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혼인 정책과 사성 정책으로 호족을 포섭해 새 왕조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구분-포인트: 고려 건국, 후삼국 통일, 호족 포섭 |
| 서희의 외교 담판 — 군사 충돌 없이 영토를 넓힌 방식은 무엇인가? | 정답: 거란의 1차 침입 때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한 외교적 성과입니다. 설명: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우고 거란과의 관계를 조정해 전면 충돌을 피했습니다. 그 결과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확보해 북방 경계를 넓혔습니다. 구분-포인트: 거란 1차 침입, 외교 담판, 강동 6주 확보 |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개경 중심 질서와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 정답: 서경 천도와 북진, 자주적 대외 정책을 주장한 개혁 운동입니다. 설명: 묘청은 서경을 중시하며 풍수지리설을 내세우고 금에 대한 강경 태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개경의 문벌 귀족 세력과 김부식 등이 이를 반대해 결국 진압되었습니다. 구분-포인트: 서경 천도, 북진·자주 노선, 김부식과 대립 |
| 팔만대장경 — 몽골 침입 속 불교 문화의 결집은 무엇인가? | 정답: 몽골 침입기에 외침 극복과 불력에 대한 염원을 담아 다시 새긴 대장경판입니다. 설명: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재조대장경은 고종 대에 조판되었습니다.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이 목판은 고려의 뛰어난 인쇄 기술과 호국 불교의 성격을 함께 보여 줍니다. 구분-포인트: 재조대장경, 고종 대 조판, 호국 불교 |
| 공민왕의 전민변정도감 — 사회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 정답: 권문세족 등이 불법으로 점유한 토지와 노비를 조사·시정하던 기구입니다. 설명: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 대에 설치되어 토지와 노비 문제를 바로잡고 국가 재정과 민생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이는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개혁과 연결됩니다. 구분-포인트: 토지·노비 시정, 권문세족 견제, 공민왕 대 개혁 기구 |
| 삼사 — 재정 운영의 담당 부서는 무엇인가? | 정답: 국가의 회계와 재정을 맡은 중앙 관청입니다. 설명: 고려의 삼사는 국가 재정의 출납과 회계를 관장했습니다. 조선의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묶어 이르는 삼사와는 전혀 다른 기관이므로 시대별 구분이 중요합니다. 구분-포인트: 재정·회계 기관, 고려의 중앙 관청, 조선의 삼사와 구별 |
| 개경 — 고려 수도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 정답: 고려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설명: 개경은 왕실과 귀족, 관료가 집중된 수도로 중앙 정치 운영의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벽란도를 통한 대외 교류와 상업 활동도 활발하여 국제성과 도시성이 두드러졌습니다. 구분-포인트: 고려 수도, 정치·경제 중심, 대외 교류 거점 |
|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 고려 미술품의 구체성은 무엇인가? | 정답: 구름과 학 무늬를 상감 기법으로 표현한 고려 청자 매병입니다. 설명: 이 유물은 고려 청자의 세련된 형태와 정교한 상감 장식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됩니다. 고려 중기 이후 상감청자 발달의 수준을 보여 주는 문화재입니다. 구분-포인트: 상감청자, 운학문, 고려 청자 대표작 |
| 병마사 — 양계의 군사적 성격 설명과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병마사 설명: 병마사는 고려의 국경 지역과 군사 요충지에 파견되어 군사 지휘를 맡은 관직이다. 특히 북계·동계 같은 양계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구분-포인트: 양계는 행정·군사 구역이고, 병마사는 그 지역의 군사 업무를 맡은 관직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
| 음서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음서는 공신이나 고위 관료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의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설명: 고려는 과거 외에도 가문의 공로와 지위를 고려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 이는 문벌 귀족 가문의 정치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구분-포인트: 과거처럼 시험 중심 선발이 아니라 가문과 공훈을 바탕으로 관직 진출이 이루어지는 제도라는 점을 구분한다. |
| 도방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도방은 무신 집권자가 운영한 사병적 경호 조직이다. 설명: 도방은 집권 무신의 신변 보호와 정권 유지를 위해 설치·운영된 사적 무력 기반이었다. 처음에는 경대승이 조직하였고, 뒤에 최씨 정권도 이를 활용하였다. 구분-포인트: 국가의 정규 군대가 아니라 집권 무신 개인 또는 가문의 권력을 뒷받침한 사적 무력 조직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상정고금예문》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상정고금예문》 설명: 고려 고종 때 최윤의 등이 편찬한 예서로, 금속 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책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금속 활자 인쇄의 이른 사례를 보여 준다. 구분-포인트: 현존하는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달리, 《상정고금예문》은 인쇄 기록만 전하고 실물은 남아 있지 않다. |
| 신흥 무인 세력 — 신돈 개인의 개혁 추진과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신흥 무인 세력 설명: 공민왕대에는 왜구 대응과 국방 활동을 배경으로 새로운 무인 세력이 성장하였다. 이들은 고려 말 정치 변동 속에서 점차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신돈의 개혁은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 개혁이고, 신흥 무인 세력은 고려 말 사회 변동 속에서 성장한 세력 집단이다. |
| 수선사 결사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지눌이 주도한 불교 교단 내부의 수행·개혁 운동이다. 설명: 수선사 결사는 타락한 불교 현실을 비판하고 참선과 수행 중심의 신앙 공동체를 세우려는 운동이었다. 후일 조계종 계통의 흐름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구분-포인트: 국가가 주도한 정책이 아니라, 교단 내부에서 전개된 자정과 수행 중심의 개혁 운동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고려의 조운과 조창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고려의 조운과 조창 설명: 지방에서 거둔 조세 곡물을 조창에 모은 뒤 수로를 이용해 개경으로 운송한 재정 운송 체제이다. 해안과 강 유역의 조창은 국가 수취물을 중앙으로 옮기는 거점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이라면, 조창은 지방 세곡을 보관하고 운송한 국가 재정 시설이다. |
| 태조 이성계의 즉위 — 조선 건국 과정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392년 이성계가 새 왕조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한 사건 설명: 이성계는 고려 말의 정치 변동 속에서 새 왕조를 세우고 태조로 즉위하였다. 조선 건국의 제도 정비와는 구별되는 왕조 성립의 직접적 계기이다. 구분-포인트: 조선 건국의 전체 과정과 달리, 이 카드는 1392년의 즉위 사건 자체를 묻는다. |
| 의정부 서사제 — 의결 구조 이해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육조의 업무를 의정부가 먼저 논의한 뒤 임금에게 아뢰어 시행하던 체제 설명: 의정부 서사제는 재상 중심의 합의 정치를 보여 주는 조선 전기의 운영 원리이다. 육조가 독자적으로 왕에게 직보하는 것이 아니라 의정부를 거쳐 정사가 처리되었다. 구분-포인트: 육조 직계제와 달리, 의정부의 정치적 비중이 큰 체제라는 점이 핵심이다. |
| 집현전 — 세종대 학술 기관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세종 대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담당한 관청 설명: 집현전은 세종 대에 학술 연구, 경전 정리, 정책 자문 등을 맡은 핵심 기관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사업에도 집현전 학사들이 참여하였다. 구분-포인트: 후대의 홍문관과 비슷한 면이 있으나, 집현전은 세종 대 국가 주도 학술 사업의 중심 기관이라는 점이 다르다. |
| 한성부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한성부 설명: 한성부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관할하며 행정·호적·도시 치안과 일부 사법 업무를 맡은 관청이다. 수도 주민과 토지에 관한 실무를 담당하였다. 구분-포인트: 사헌부가 관리 감찰과 탄핵을 맡은 언론 기관이라면, 한성부는 수도 행정을 담당한 관청이다. |
| 훈련도감 — 임진왜란 직후 군제 개편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임진왜란 중 설치되어 이후 존속한 중앙군의 핵심 부대 설명: 훈련도감은 1593년에 설치된 군영으로,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반영한 상비군적 성격의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구분-포인트: 전쟁이 끝난 뒤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중 설치되어 이후 조선 후기 중앙 군영 체제의 핵심이 되었다는 점을 구별한다. |
|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 해전의 전환점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592년 이순신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격파한 해전 설명: 한산도 대첩은 조선 수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승전이다. 일본군의 해상 보급과 작전에 큰 타격을 주었다. 구분-포인트: 육지 전투가 아니라 수군이 주도한 해전이며, 임진왜란 초기 전세 변화의 계기라는 점을 구별한다. |
| 행주대첩 — 수도 방어전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전투 설명: 1593년 무렵 권율이 이끈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의 공격을 막아 낸 전투로, 한양 수복 과정에서 조선 측 사기를 높였다. 구분-포인트: 한산도대첩 같은 해전이 아니라, 산성을 거점으로 한 육상 전투라는 점이 핵심이다. |
| 조선의 수취 체제 정비 — 전쟁 후 재정 회복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임진왜란 이후 조세·공납·역 체제를 다시 정비해 재정을 회복하려 한 흐름 설명: 전란으로 국가 재정이 흔들리자 공납 운영의 개편, 군역 부담 조정 등 수취 질서를 손질하려는 정책이 이어졌다. 구분-포인트: 대동법이나 균역법 같은 개별 제도만이 아니라, 전후 수취 체제 전반의 정비 흐름을 묻는 항목이다. |
| 공납의 폐단 — 조선 전기 재정 문제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지방 특산물을 바치게 한 공납 운영에서 나타난 과중한 부담과 부정 설명: 실제 산출과 무관한 징수, 대납 과정의 중간 착취 등으로 백성의 부담이 커졌고, 이는 뒤에 대동법 시행의 배경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공납 제도 자체와 달리, 그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폐단을 묻는 항목이다. |
| 훈구의 공신 정치 — 조선 초기 권력 구조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조선 전기 공신 세력이 권력을 주도한 정치 구조 설명: 건국과 왕위 계승 과정에서 공을 세운 세력이 관직과 경제 기반을 바탕으로 정국을 이끌었으며, 이후 사림과 대립하는 한 축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사림과 대비되는 조선 전기의 지배 세력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
| 오위 체제 — 군사 편제의 핵심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조선 전기 중앙군을 5위로 편성한 군사 체제 설명: 5위는 수도와 궁궐 방위를 중심으로 운영된 중앙 군사 조직으로, 병종과 지휘 체계를 갖추어 조선 전기 기본 군제를 이루었다. 구분-포인트: 임진왜란 이후의 훈련도감 같은 상비군 체제와 구별되는 조선 전기의 중앙군 편제이다. |
| 조선의 군현제 정비 — 지방 통치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지방을 군·현 등 행정 단위로 나누어 중앙이 통치한 제도 설명: 조선은 고려 이래의 지방 제도를 정비해 부·목·군·현 체계를 운영하고, 수령을 파견해 지방 행정을 장악하였다. 구분-포인트: 향촌의 자치 질서와 구별되는 중앙 집권적 지방 행정 체계라는 점이 핵심이다. |
| 공법 — 조선 전기 세금 제도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토지의 비옥도와 해마다의 풍흉을 고려해 전세를 부과한 제도입니다. 설명: 세종 때 마련되어 전분 6등과 연분 9등의 기준에 따라 전세를 정하도록 했습니다. 구분-포인트: 토지 비옥도와 수확 상황을 반영한 전세 제도라는 점에서, 단순 정액세와 구별됩니다. |
| 춘추관 — 경연과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춘추관 설명: 춘추관은 시정 기록과 실록 편찬에 관계한 관청이다. 왕과 신하가 경서를 강론하던 경연과 달리, 사관의 기록과 역사 편찬 업무를 맡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분-포인트: 경연은 정치·학문 토론의 자리이고, 춘추관은 역사 기록과 실록 편찬을 담당한 기구이다. |
| 사림의 향촌 진출 — 조선 전기 사회사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지방에서 학문과 향촌 질서를 바탕으로 성장한 유학자 집단의 확대입니다. 설명: 사림은 지방에서 서원, 향약 등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웠고, 성종 대부터 중앙 정치에 진출하여 16세기에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구분-포인트: 훈구가 공신적 기반과 중앙 권력을 바탕으로 했다면, 사림은 향촌 사회와 학문적 명분을 중시했습니다. |
| 역 — 조선 전기 백성의 의무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국가에 노동력이나 군사적 의무를 제공하는 부담입니다. 설명: 좁게는 부역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군역을 포함한 국가에 대한 인적 부담을 뜻하기도 합니다. 구분-포인트: 현물이나 곡물을 바치는 세금과 달리, 사람의 노동력과 복무를 바탕으로 한 부담입니다. |
| 노비 — 조선 전기 사회 구조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국가나 개인에게 예속된 신분층입니다. 설명: 공노비와 사노비로 나뉘었으며, 신분상 제약 속에서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구분-포인트: 양민과 달리 법적으로 예속된 존재였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 사족 — 조선 전기 향촌 사회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향촌에서 학문적 권위와 사회적 지배력을 지닌 지방 양반층입니다. 설명: 서원, 향약, 유향소 등을 기반으로 향촌 질서를 주도하였고, 사림 세력의 사회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구분-포인트: 중앙 관직보다는 지역 사회에서의 지배와 운영에 초점이 있는 집단입니다. |
| 자격루 — 조선 전기 과학 기구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물의 흐름을 이용해 시각을 자동으로 알리는 물시계입니다. 설명: 세종 대에 제작된 자동 물시계로, 일정한 수량의 물이 흐르는 원리를 이용해 종·북 등으로 시각을 알렸습니다. 구분-포인트: 해의 그림자를 이용하는 앙부일구와 달리, 자격루는 물시계입니다. |
| 칠정산 — 조선 전기 역법서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천체의 운행을 계산해 역법을 정리한 조선의 역법서입니다. 설명: 세종 대에 편찬된 칠정산은 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천문 계산을 정비한 역법서로, 내편과 외편이 있으며 당시 중국 역법과 이슬람 계통 천문 지식의 영향을 함께 보여 줍니다. 구분-포인트: 단순한 달력이 아니라 국가의 역법 체계를 정비한 계산서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 용비어천가 — 조선 전기 왕조 찬양 문학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조선 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노래한 악장 문학입니다. 설명: 세종 대에 편찬된 용비어천가는 조선 건국 세력의 계보와 공덕을 찬양하여 새 왕조의 정치적 정통성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구분-포인트: 개인 감정의 서정시가 아니라 왕조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정치적 성격의 악장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 사민 정책 — 조선 전기의 경제 운영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변방 지역에 주민을 옮겨 정착시켜 국방과 개간을 함께 도모한 이주 정책입니다. 설명: 조선 전기에는 북방 개척과 변경 안정 과정에서 백성을 이주시켜 살게 하는 사민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 군사 방어, 토지 개간, 행정 통제를 함께 노린 정책이었습니다. 구분-포인트: 자발적 이주 장려가 아니라 국가가 주도한 변경 정착 정책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 의창 — 조선 전기의 사회·구휼 제도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지방에서 곡식을 비축해 흉년이나 춘궁기에 백성을 구제하던 구휼 제도입니다. 설명: 의창은 평상시에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재해나 식량 부족 시 백성에게 빌려 주거나 구제하는 데 활용한 제도입니다. 구분-포인트: 물가 조절보다 빈민 구제와 구황 기능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상평창과 구분해야 합니다. |
| 저화와 조선통보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저화와 조선통보 설명: 조선 전기 정부는 종이 화폐인 저화와 동전인 조선통보의 유통을 추진했지만 널리 정착하지 못했다. 실제 거래에서는 쌀과 면포 같은 현물이 계속 중요한 교환 수단으로 쓰였다. 구분-포인트: 화폐를 발행한 사실과 화폐가 일상 거래에 널리 유통된 상태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
| 동인과 서인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선조 때 사림이 인사 문제와 학연·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갈라진 두 붕당이다. 설명: 동인과 서인의 분화는 16세기 후반 심의겸·김효원 등을 둘러싼 인사 갈등을 계기로 본격화하였다. 이후 동인은 남인·북인으로, 서인은 노론·소론으로 다시 분화하였다. 구분-포인트: 동인은 이황, 서인은 이이처럼 단순히 학통만으로 일대일 대응시키기보다, 인사 갈등과 정치적 분화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
| 기사환국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689년에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한 환국이다. 설명: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와 인현왕후의 폐위 문제를 둘러싸고 정국이 급변하면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구분-포인트: 1680년 경신환국 뒤에 일어났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뒤집힌다는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 |
| 탕평비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탕평비 설명: 영조는 붕당에 치우치지 않는 인재 등용의 뜻을 알리기 위해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웠다. 탕평 정치의 이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유물이다. 구분-포인트: 탕평책은 정치 운영 원칙이고, 탕평비는 영조의 탕평 의지를 새겨 세운 비석이다. |
| 안동 김씨의 세도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순조·헌종·철종 대에 걸쳐 큰 세력을 행사한 대표적 세도 가문이다. 설명: 특히 순조 대 이후 안동 김씨는 왕실과의 혼인을 바탕으로 요직 인사와 정국 운영을 좌우하였다. 그 영향력은 시기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19세기 세도 정치의 중심 가문으로 꼽힌다. 구분-포인트: 순조·헌종 대에 특히 강했고, 철종 대에도 다시 큰 영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풍양 조씨와 구별한다. |
| 환곡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봄철이나 춘궁기에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 뒤에 갚게 하던 진휼·구휼 성격의 제도이다. 설명: 본래는 백성의 생활 안정을 돕는 제도였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지방관과 향리의 부정으로 인해 수탈 수단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구분-포인트: 애초의 목적은 구휼이었지만, 후기에는 운영 폐단이 심해졌다는 점을 함께 파악한다. |
| 공인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관청의 필요 물품을 조달하던 어용상인, 곧 국가의 인정을 받은 상인이다. 설명: 대동법 시행 이후 관청은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조달하게 되었고, 공인은 이를 맡아 공급하면서 상업 자본을 축적하였다. 이들은 조선 후기 상업 발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구분-포인트: 시전 상인처럼 도시의 특권 상업과만 연결하기보다, 국가 물자 조달 기능이 핵심이라는 점을 구별한다. |
| 선상(船商) 활동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배를 이용해 물자를 운송하며 상업 활동을 전개한 상인을 이른다. 설명: 조선 후기 수운과 장시 유통망의 발달 속에서 강·하천·연해를 따라 상품을 실어 나르며 거래하였다. 지역 간 물자 유통을 촉진한 상업 활동의 한 형태였다. 구분-포인트: 보부상·행상 같은 육상 유통 상인과 구별되는 수상 운송 기반의 상업 활동으로 본다. |
| 광작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넓은 토지를 경작하여 생산과 수익을 확대하려 한 농업 경영 방식이다. 설명: 조선 후기 일부 부농층이나 지주층은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해 경작 규모를 넓혔고, 이를 통해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둔 생산을 확대하였다. 구분-포인트: 소규모 자급 농업과 달리 경영 규모 확대와 상품 생산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본다. |
| 농서 《임원경제지》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서유구가 19세기 전반에 편찬한 조선 후기의 종합 생활 백과사전이다. 설명: 농업뿐 아니라 원예, 음식, 주거, 의복 등 생활 전반의 실용 지식을 폭넓게 정리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의 실용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저술이다. 구분-포인트: 단순한 농업 기술서가 아니라 생활 문화와 생업 전반을 포괄한 실용 백과라는 점을 구별한다. |
| 영정법 — 조선 후기 전세 제도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635년 인조 때 풍흉과 관계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두로 고정한 제도입니다. 설명: 연분9등법의 복잡한 운영을 단순화했지만 여러 부가 부담이 남아 농민의 실제 부담이 완전히 줄지는 않았습니다. 구분-포인트: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로 거둔 대동법, 군포 부담을 줄인 균역법과 구분합니다. |
| 납속책 — 조선 후기 신분·재정 변화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전란·흉년 때 곡식을 바친 사람에게 면천·면역·관직 등의 포상을 주어 재정과 구휼 재원을 마련한 정책입니다. 설명: 임진왜란 이후 공명첩 발급 등과 결합해 확대되었고 신분 이동을 촉진하는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구분-포인트: 세도 가문의 혼인 기반 권력 독점이 아니라 국가의 재정 확보와 신분 특전 교환에 초점이 있습니다. |
| 『북학의』 — 조선 후기 사상·저술에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박제가가 청의 발전한 문물과 상공업을 받아들여 생산과 유통을 활성화하자고 주장한 북학 저술입니다. 설명: 절약만 강조하기보다 소비와 유통이 생산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펴고 수레·선박·도로 등의 개선을 제안했습니다. 구분-포인트: 북학파라는 사상 계열의 별칭을 반복한 카드가 아니라 박제가의 구체적인 저술과 개혁론을 다룹니다. |
| 흥선대원군 집권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흥선대원군의 섭정 정치 설명: 1863년 고종이 즉위한 뒤 친정을 시작하기 전까지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주도한 시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1860년대~1873년의 집권을 가리킨다. 구분-포인트: 국왕은 고종이었지만 실제 정국 운영은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섭정 국면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
| 삼군부 기능 회복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삼군부 기능 회복 설명: 흥선대원군은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려 행정과 군사 업무를 나누었다. 조선 후기 비변사에 집중된 권한을 재편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한 조치이다. 구분-포인트: 의정부는 행정을, 삼군부는 군사 업무를 맡도록 정비한 중앙 통치 체제 개편이다. |
| 조선책략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조선책략》 유입 설명: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지은 책으로, 1880년 무렵 조선에 소개되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친청·결일·연미의 외교 구상을 제시하였다. 구분-포인트: 서양 문물을 단순 소개한 책이 아니라, 개화기 조선의 외교 노선 논의와 개화 정책 추진에 영향을 준 문헌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갑신정변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갑신정변 설명: 1884년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배경으로 일으킨 정변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다.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구분-포인트: 급진 개화파의 근대화 시도였지만 일본에 의존했고, 청의 군사 개입으로 실패한 단기 정변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교조신원운동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동학 교조신원운동 설명: 최제우의 억울한 처형에 대한 신원을 요구하고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며 포교의 자유를 얻고자 전개한 운동이다. 1892년 삼례 집회와 서울 복합 상소, 보은 집회 등으로 이어졌다. 구분-포인트: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과 달리, 교조신원운동은 무장 봉기 이전에 전개된 합법적 청원·집회 운동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황토현 전투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황토현 전투 설명: 1894년 동학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로, 농민군의 초기 승리를 대표한다. 구분-포인트: 백산 봉기 뒤 전개된 초기 전투들 가운데 농민군의 전투력과 사기를 크게 높인 승전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군국기무처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군국기무처 설명: 1894년 갑오개혁 추진 과정에서 설치된 최고 정책 기구로, 개혁의 주요 방침을 심의·결정하였다. 구분-포인트: 전주 화약 뒤 등장한 집강소와 달리, 군국기무처는 정부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한 중앙 기구라는 점을 구분한다. |
| 탁지아문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탁지아문 설명: 갑오개혁 때 설치된 근대적 중앙 행정 기구의 하나로, 국가 재정을 담당하였다. 기존의 호조 기능이 근대적으로 재편된 것이다. 구분-포인트: 전통적 6조 체제의 호조와 기능상 연속성은 있으나, 갑오개혁기 중앙 행정 개편 속에서 정비된 아문이라는 점을 구분한다. |
| 조선 총독부 — 일제 식민 통치의 성격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총괄한 최고 통치 기관이다. 설명: 1910년 10월 설치된 조선 총독부는 총독이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강한 권한을 행사한 식민 통치 기구였다. 특히 초기에 군인 출신 총독과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의 중심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구분-포인트: 통감부와 구별, 식민 통치 최고 기관, 총독의 강력한 권한, 무단 통치와 연결 |
| 산미 증식 계획 — 식민지 농업 정책을 무엇과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일본의 식량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조선의 쌀 생산과 반출을 늘리려 한 정책이다. 설명: 1920년대부터 추진된 산미 증식 계획은 수리 시설 확충과 품종 개량 등을 내세워 쌀 생산 증대를 꾀하였다. 그러나 증산된 쌀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농민 부담과 소작 문제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구분-포인트: 1920년대 시작, 쌀 증산과 일본 반출, 농민 부담 가중, 소작 문제 심화 |
| 병참기지화 정책 — 일제 말 전시 동원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중일 전쟁 전후 조선을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병참 기지로 재편한 정책이다. 설명: 1930년대 후반 이후 일제는 조선의 공업, 자원, 노동력을 침략 전쟁 수행에 맞추어 동원하였다. 특히 중일 전쟁 이후 군수 공업 육성과 인적·물적 수탈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은 병참기지로 편제되었다. 구분-포인트: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시 동원 강화, 군수 공업 육성, 자원·노동력 수탈 |
| 신민회 — 국내 민족 운동의 비밀결사를 무엇과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국권 회복과 공화정 지향 아래 실력 양성과 독립운동을 추진한 비밀결사이다. 설명: 1907년 조직된 신민회는 안창호, 양기탁, 신채호, 이동휘, 이회영 등 여러 인사가 참여하여 학교 설립, 산업 진흥, 청년 교육, 독립운동 기지 건설 등을 추진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의 성격과 비밀 결사의 성격을 함께 지녔다. 구분-포인트: 1907년 조직, 비밀결사, 실력양성 운동, 공화정 지향, 독립운동 기지 건설 |
| 브나로드 운동 — 농촌 계몽 운동을 무엇과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동아일보가 1931년부터 전개한 농촌 계몽 운동이다. 설명: 학생과 지식인 등이 농촌에 들어가 한글 보급, 문맹 퇴치, 위생·생활 개선 등을 추진하였다. 러시아어 ‘브나로드(민중 속으로)’에서 이름을 따 왔다. 구분-포인트: 동아일보 주도, 1931년 시작, 농촌 계몽·문맹 퇴치 |
| 조선노농총동맹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조선노농총동맹 설명: 1924년 노동 단체와 농민 단체가 연합해 조직한 사회 운동 단체이다. 노동자·농민의 권익 향상과 조직화를 추진했으며, 이후 노동·농민 운동의 전국적 연대에 영향을 주었다. 구분-포인트: 원산 총파업이 특정 지역의 노동 쟁의라면, 조선노농총동맹은 노동자와 농민 단체를 아우른 전국 조직이다. |
| 진단학회 — 역사·지리 연구 단체를 무엇과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934년 창립된 한국사 중심의 실증주의 역사학 연구 단체이다. 설명: 이병도·손진태 등이 참여하여 한국사의 체계적 연구를 추구하였다. 역사 연구가 중심이었으며, 지리 연구 단체로만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구분-포인트: 1934년 창립, 실증주의 역사학, 한국사 연구 단체 |
| 김상옥 의거 — 의열단과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김상옥 의거 설명: 김상옥 의거는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한 무장 투쟁이다. 의열단이 조직 전체를 가리킨다면, 이 항목은 그 조직이 전개한 구체적 의거를 뜻한다. 구분-포인트: 의열단은 비밀 결사 조직이고, 김상옥 의거는 그 조직 계열의 대표적 국내 무장 투쟁이다. |
| 38도선 분할 점령 — 해방 직후 한반도 분단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 정답: 1945년 8월 해방 직후, 소련군과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 접수와 무장 해제를 위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조치. 설명: 이는 군사적 편의에 따른 임시 점령선이었으나, 이후 남북에 서로 다른 점령 체제와 정치 질서가 형성되면서 분단 고착의 출발점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해방 직후의 군사 분할선이지, 한국 전쟁 뒤의 군사분계선이나 남북한 정부 수립 자체와는 구별해야 한다. |
| 제헌 국회 — 초대 입법 기관으로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1948년 5·10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 설명: 이 국회는 제헌 헌법을 제정하고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는 등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핵심 절차를 담당하였다. 구분-포인트: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을 맡은 최초의 국회이며, 미군정기의 남조선 과도입법의원과는 다르다. |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친일 청산을 맡은 국회 기구는 무엇인가? | 정답: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설치되어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조사·체포한 특별 조사 기구. 설명: 1948년 국회 산하에 구성되어 친일 청산을 시도하였으나, 이승만 정부와 경찰의 방해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1949년 사실상 해체되었다. 구분-포인트: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을 위한 기구이며, 훗날의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
| 4·19 혁명 — 학생과 시민이 이끈 민주화 운동은 무엇인가? | 정답: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민주주의 혁명. 설명: 대규모 시위 끝에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 내어 제1공화국을 무너뜨렸고,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구분-포인트: 부정선거 규탄 운동을 넘어 정권 교체를 이룬 혁명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
| 새마을운동 — 농촌 근대화 운동의 이름은 무엇인가? | 정답: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농촌 중심의 지역 개발 및 생활 개선 운동. 설명: 근면·자조·협동을 내세워 농촌 환경 정비와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였고 이후 도시로도 확대되었으나, 강한 국가 주도와 동원의 성격도 지녔다. 구분-포인트: 출발은 농촌 개발 운동이며, 민주화 운동이나 도시 노동 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
| 유신 헌법 — 대통령 장기 집권 체제의 헌법은 무엇인가? | 정답: 1972년에 제정된 유신 헌법. 설명: 대통령 간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 긴급조치권 등으로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 헌법 아래 제4공화국 체제가 전개되었다. 구분-포인트: 제3공화국 헌법과 구별되는 권위주의적 헌정 체제의 핵심 장치이다. |
|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 5·18 민주화 운동과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설명: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제정된 법이다. 1980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훗날 국가가 법률로 역사적 책임을 다루기 시작한 조치라는 점이 핵심이다. 구분-포인트: 5·18 민주화 운동은 사건이고,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은 그 진상 규명과 처벌을 위한 후대의 법 제정이다. |
|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 민주화 이후 제도화된 주민 참여는 무엇인가? | 정답: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며 지방자치가 전면화된 것. 설명: 지방의회 선거는 1991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995년에 실시되어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부활하였다. 이를 통해 주민이 지역 정치에 참여하는 제도적 기반이 강화되었다. 구분-포인트: 해방 직후의 제도 논의와 구별되며, 현대 민주화 이후 실제 선거 실시를 통해 전면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
| 국방경비대 — 무엇을 구분해야 하는가? | 정답: 국방경비대 설명: 미군정이 1946년 남한에 조직한 군사 조직으로, 뒤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육군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 광복 직후 군 조직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구분-포인트: 경찰 조직인 국립경찰과 구별하고, 국방경비대는 정규 군대 창설로 이어진 군사 조직이라는 점을 기억한다. |
자주 묻는 질문
심화 1급 합격을 보장하는 덱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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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검 심화 500|한국사능력검정 핵심 암기 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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